이탈리아 축구는 오랜 시간 동안 '수비의 미학'이라는 별칭을 지닐 만큼 전술적인 완성도와 안정감으로 명성을 쌓아왔다.
특히 카테나치오(Catenaccio)로 대표되는 고전적 수비 전술은 이탈리아 축구의 정체성을 형성한 핵심 요소였다.
하지만 현대 축구의 흐름과 더불어 이탈리아의 수비 전술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공간과 압박의 개념을 통해 새로운
전략적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전통적인 이탈리아 수비 전술의 기원과 발전, 그리고 현대화된 전술 패러다임의 변화를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수비의 철학, 그 기원과 배경
이탈리아 축구가 수비 전술을 중심으로 발전한 데에는 명확한 역사적 배경이 존재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기에 접어든 이탈리아 사회는 축구에서도 ‘안정’과 ‘효율’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 결과 수비 위주의 플레이 스타일은 국가적 분위기와 맞물려 대중적인 전략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1960년대에 인테르 밀란의
전설적인 감독 헬레니오 에레라가 카테나치오를 체계화하며, 이탈리아 축구는 본격적인 수비 축구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카테나치오는 이중 스위퍼 시스템을 중심으로 상대 공격의 루트를 차단하고, 빠른 역습을 통해 최소한의 기회로 최대한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전술이다.
이는 당시 피지컬과 기술보다 전술적 사고와 팀워크를 중시하는 이탈리아 선수 구성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결과적으로 이탈리아는 월드컵과 유럽 클럽 대항전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며 수비축구의 진가를 입증했다.
그러나 이러한 수비 중심 축구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단점도 분명해졌다.
과도한 수비 집중은 창의적인 공격의 부재로 이어졌고, 해외에서는 지루한 경기 운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축구는 ‘수비는 예술이다’라는 철학 아래 자신들만의 길을 고집했고, 그 철학은 오늘날까지도 전술적 유산으로 계승되고
있다.
카테나치오에서 존 디펜스로
현대 이탈리아 축구는 고전적인 카테나치오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점차 유럽 축구의 흐름에 맞춰 전술적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공간을 관리하는 수비 방식, 즉 존 디펜스(zone defense)의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과거의 마크맨 투맨 수비는 공격수를 개인적으로 따라다니는 데 중점을 뒀다면, 현재의 수비는 공간 자체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수비 라인을 유지한다.
대표적인 예로, 안토니오 콘테 감독의 유벤투스 시절 전술을 들 수 있다. 그는 3백 기반의 포메이션에서 윙백의 역할을 강조하며
공격과 수비의 균형을 꾀했다. 특히 수비 시에는 5백으로 전환되며 상대 공격수들의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이는 단순히 수비수의 개수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위치를 세밀하게 조절하는 현대적 해석의 결과물이다.
또한, 이탈리아 대표팀의 최근 전술에서는 프레싱과 라인 간격 조절을 통해 적극적인 수비를 구현하고 있다.
기존의 수동적인 수비가 아니라, 상대 공격을 미리 예측하고 그 움직임을 제한하는 '능동적 수비 전략'이 강조된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적인 공격 축구 흐름 속에서도 이탈리아가 여전히 강력한 수비력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와 함께, 세리에 A 클럽들도 공격 전개 능력을 키우면서 수비 조직력과의 조화를 도모하고 있다.
이는 과거와 같은 단선적인 수비 축구가 아니라, 수비를 기반으로 한 전체적인 팀 전술 전략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다.
즉, 현대 이탈리아 축구는 단순한 ‘수비형 팀’이 아닌, 수비를 중심으로 한 ‘전술적 팀’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변화 속에서도 지켜지는 본질
이탈리아 축구의 수비 전술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
카테나치오라는 고전적인 전략에서 출발해 공간 중심의 존 디펜스, 그리고 현대적 프레싱 전술까지 다양한 변화를 거쳤지만,
그 근간에는 여전히 ‘수비에 대한 철학’이 자리잡고 있다. 단순히 골을 막는 것을 넘어, 경기를 통제하고 상대의 흐름을 차단하는
고도의 전략으로서 수비를 해석하는 접근은 이탈리아 축구의 정체성을 형성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이탈리아 축구는 시대의 요구에 맞춰 전술적으로 더욱 정교해질 것이며,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도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경기에서 ‘이기는 법’을 알고 있는 축구, 그것이 바로 이탈리아가 세계 축구 무대에서 여전히 두려운 존재로 남아 있는 이유다.
수비를 예술로 승화시킨 그들의 철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